
처음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을 때, 저도 완전히 같은 실수를 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담은 플레이리스트를 올리면 당연히 사람들이 좋아해 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어떤 영상은 틀어놓고 계속 반복 재생되고, 어떤 영상은 30초도 안 돼서 이탈이 터졌습니다. 그 차이가 뭔지 한참을 고민했는데, 결국 답은 하나였습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걸 만들었는가, 아닌가. SaaS 창업도 정확히 같은 원리로 움직입니다.
프로덕트 마켓핏,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실제는 다르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프로덕트 마켓핏(Product-Market Fit)이라는 말은 거의 주문처럼 쓰입니다. 여기서 프로덕트 마켓핏이란 특정 제품이 특정 시장의 수요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상태, 쉽게 말해 고객이 "이거 없으면 안 되겠다"고 느끼는 단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이걸 "사람들이 좋아하는 제품"쯤으로 이해하고 넘어갑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좋아한다는 것과 필요하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합기도 도장에서 아이들을 15년 넘게 가르치면서 느낀 게 딱 이겁니다. 수업이 재미있다는 것과, 그 수업이 없으면 불안해한다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진짜 프로덕트 마켓핏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입니다.
수백억 규모 소프트웨어 회사를 일군 창업가들이 제시하는 기준도 같습니다. 서비스가 잠깐 멈췄을 때 고객이 화를 내는가. 그 질문 하나가 전부입니다. 구독이 끊겼는데 며칠 동안 아무도 연락이 없다면, 그건 있으면 좋은 제품이지 없으면 안 되는 제품이 아닙니다. 최소 20명에서 50명의 고객이 서비스가 사라지는 순간 강하게 반응해야, 비로소 사업이 제대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23년 CB인사이츠(CB Insights) 분석에 따르면, 스타트업 실패 원인 1위가 시장 수요 없는 제품 출시로 전체 실패 사례의 42%를 차지했습니다(출처: CB Insights). 좋아 보이는 아이디어로 시작했지만, 고객이 진짜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고객이 결과를 얻지 못하면 마케팅은 의미 없다
이 부분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창업을 이야기하는 많은 콘텐츠들이 마케팅 전략, 퍼널 설계, 광고 최적화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실제 성공한 창업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순서가 완전히 반대입니다.
여기서 퍼널(Funnel)이란 잠재 고객이 제품을 인지하고 구매까지 이어지는 단계적 흐름을 뜻합니다. 마케팅에서는 이 흐름을 최적화하는 데 많은 자원을 씁니다. 그런데 퍼널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제품을 사용한 고객이 결과를 얻지 못하면 모든 게 무너집니다.
고객은 제품 자체를 사는 게 아니라 결과를 삽니다. 매출을 올려준다는 소프트웨어가 실제로는 매출에 아무 영향이 없다면, 처음엔 호기심으로 구독할 수 있어도 다음 달 결제일에 조용히 해지합니다. 이걸 반복하면 어떻게 될까요. 초반 마케팅으로 끌어온 고객들이 전부 빠져나가고, 매달 광고비만 나가는 구조가 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콘텐츠 제작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ASMR 영상을 만들었는데 실제로 듣다가 잠들기가 불편한 구성이라면, 아무리 썸네일이 예뻐도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결국 제품을 공개하기 전에 실제 고객에게 적용해보고, 결과가 나오는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결과가 한 번이라도 나오지 않으면 그때 개선하는 것이지, 마케팅을 먼저 시작할 이유가 없습니다.
시장 규모와 고객 단가, 두 가지를 함께 봐야 한다
좋은 제품을 만들었고, 고객이 실제로 결과를 얻는다는 것도 확인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다음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시장이 내가 원하는 규모의 사업을 가능하게 하는가.
여기서 LTV(고객 생애 가치)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LTV란 한 명의 고객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기간 동안 지불하는 총 금액을 의미합니다. 고객 수가 적더라도 LTV가 높다면 충분히 큰 사업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고객 수가 많아도 LTV가 너무 낮으면 성장에 한계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변호사나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AI 플랫폼은 고객 수는 많지 않지만 고객 한 명이 지불하는 금액이 상당합니다. 수백 명의 고객만으로도 수십억 규모의 사업이 가능한 구조가 됩니다. 반면 월 몇천 원짜리 앱으로 수백억을 만들려면 수백만 명의 사용자가 필요합니다. 어떤 구조를 선택하느냐가 사업의 방향과 전략을 완전히 바꿉니다.
특수부대에서 복무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가 이겁니다. 자원은 제한적이고, 어디에 집중하느냐가 결과를 결정합니다. 화려한 장비보다 극한 상황에서도 작동하는 실전성이 중요하듯, 사업도 넓게 퍼지는 것보다 의미 있는 시장을 정확하게 겨냥하는 게 먼저입니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도 이 원칙은 데이터로 확인됩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창업 3년 이내 생존율은 약 60% 수준에 그치며 시장 규모와 수익 모델을 검증하지 않은 경우가 주된 원인으로 꼽혔습니다(출처: 중소벤처기업부).
사업 시작 전에 스스로 확인해야 할 핵심 질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 시장에서 목표 매출을 달성하기에 고객 수가 충분한가
- 고객 한 명의 LTV가 사업을 유지할 만큼 충분한가
- 내가 선택한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가, 아니면 수축하고 있는가
바이럴 : 고객이 2분 안에 가치를 느끼지 못하면 이미 늦다
제가 직접 여러 SaaS 서비스를 써보면서 느낀 건 온보딩(Onboarding)의 차이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온보딩이란 신규 사용자가 제품에 처음 접했을 때 핵심 가치를 경험하기까지의 과정을 말합니다. 이 과정이 복잡하거나 길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치를 경험하기도 전에 떠납니다.
회원 가입을 하자마자 수십 개의 설정 메뉴가 펼쳐지는 서비스를 보면서 항상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걸 만든 사람은 고객이 어떻게 느낄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을까. AI 발표 자료 서비스인 Gamma는 가입 직후 몇 초 만에 결과물이 생성됩니다. 복잡한 설명 없이 바로 "이거 진짜 되네"라는 순간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 경험 하나가 사람을 계속 돌아오게 만듭니다.
바이럴(Viral)이 일어나는 것도 결국 이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바이럴이란 고객이 제품을 자발적으로 주변에 소개하면서 광고 없이 확산되는 현상입니다. 좋은 경험을 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주변에 이야기합니다. 어떤 영양제를 먹고 효과를 봤을 때 가만히 있기가 어렵듯이, 제품이 실제로 문제를 해결해 주면 고객 스스로 퍼뜨리기 시작합니다. 광고비 없이 성장하는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 순간이 콘텐츠에서도 정확히 일어납니다. 운동 후 지친 상태에서 틀었을 때 딱 맞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그 영상 링크를 바로 공유하게 됩니다. 그건 제가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그 순간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줬기 때문입니다. 사업도 결국 이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결국 SaaS든 콘텐츠든 어떤 사업이든, 오래 살아남는 것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그 결과를 빠르게 경험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 저도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화려한 기획보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사람에게 실제로 필요한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마케팅 전략보다 먼저 그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보는 게 순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