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꽤 오래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회계사, 변호사, 의사 같은 전문직은 경기가 흔들려도 끄떡없다고 믿었거든요. 그 믿음은 투자 판단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그런데 신입 회계사가 수습 자리를 못 찾아 택배 알바를 한다는 이야기를 접하고서 그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5년 공부해서 딴 자격증인데, 왜 일자리가 없을까
공인회계사(CPA) 합격자 수는 2019년 약 900명대에서 2024년 1,500명대 수준까지 불어났습니다. CPA란 기업의 재무제표를 검토하고 감사하는 공인된 회계 전문가를 말합니다. 선발 인원은 늘었는데 수습 등록을 하지 못한 인원이 800명을 넘었다는 사실은,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 얼마나 심각해졌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제가 직접 느낀 건 이겁니다. 문제의 핵심은 자격증 남발이 아니라 구조의 변화입니다. 회계법인에서 신입이 맡던 업무 — 전표 정리, 데이터 대조, 감사 조서 초안 작성 같은 이른바 주니어 레벨 업무 — 가 자동화 시스템과 AI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습니다. 시니어 회계사는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 시니어로 성장하기 위한 입문 단계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게 왜 심각한 문제냐면, 조직의 허리를 담당할 중간 관리자와 미래 리더는 결국 주니어 경험을 쌓은 사람들 중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진입 경로가 막히면 10년 후 조직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당장의 취업난을 넘어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제가 이 상황을 심각하게 보는 이유입니다.
현재 AI가 가장 먼저, 가장 효율적으로 대체하는 업무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매뉴얼화된 반복 업무 (감사 조서 작성, 데이터 검증 등)
- 대규모 학습 데이터가 축적된 정형화된 작업
- 판단보다 처리 속도가 중요한 하단 업무
흥미롭게도 이 패턴은 회계사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변호사 사무소의 계약서 검토, 개발팀의 단순 코딩, 저널리즘의 데이터 정리 업무까지 동일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AI 시대, 노동시장에서 진짜 일어나는 일
S&P 500에 편입된 기업들의 데이터를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나타납니다. 기업 가치는 꾸준히 상승하는데, 총 고용 인원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과거에는 고용 증가가 성장의 신호였지만, 지금은 적은 인원으로 더 높은 생산성을 내는 기업이 오히려 시장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출처: S&P Global).
여기서 생산성(Productivity)이란 동일한 자원으로 얼마나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쉽게 말해 100명이 하던 일을 10명이 해내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투자 공부를 하면서 실제로 확인한 사례도 이와 일치합니다. 직원이 50명 안팎이면서 연 매출이 수백억 원에 달하는 AI 기반 스타트업들이 미국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1인당 매출액이 수십억 원에 육박하는 구조인데, 이는 불과 10년 전이라면 불가능했을 숫자입니다. 과거에는 인력과 자본을 레버리지로 삼았다면, 지금은 AI 지능 자체를 레버리지로 삼는 시대가 됐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 변화가 투자 관점에서 왜 중요하냐면, 기업 분석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 기업을 볼 때 "AI가 이 회사 업무의 몇 퍼센트를 대체할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업종의 성장성을 먼저 봤는데, 관점이 바뀐 겁니다. 실제로 인건비 비중이 높으면서 업무 매뉴얼화가 잘 된 기업일수록 AI 전환 비용은 낮고 생산성 향상 폭은 크다는 걸 체감하게 됐습니다.
이 변화는 산업혁명 당시 증기기관이 방직 공장 노동자를 대체했던 것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그때도 단기적으로는 고용이 줄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직업군이 생겨났습니다. 다만 그 전환 과정에서 기존 노동자들이 겪은 고통은 분명히 존재했고, 지금 회계사 취업난도 그 과정에 있는 하나의 단면이라고 봅니다(출처: 한국고용정보원).
그래서 지금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가
이 흐름을 보면서 제가 바꾼 투자 접근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ETF(Exchange Traded Fund)를 중심으로 분산하는 것입니다. ETF란 주식처럼 거래소에서 사고팔 수 있는 펀드로, 하나의 상품 안에 여러 자산이 묶여 있어 자동으로 분산 투자 효과를 냅니다. AI 관련 섹터 ETF만 담는 것이 아니라 채권, 금, 미국 기술주, 신흥국 등 서로 다른 성격의 자산을 여러 개 깔아 두는 전략입니다. 어느 한 산업이 AI에 의해 흔들려도 다른 자산이 완충 역할을 해줄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복리(Compound Interest)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복리란 원금에서 발생한 이자가 다시 원금에 합쳐져 그 합산 금액에 또 이자가 붙는 방식입니다. '72의 법칙'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72를 연간 수익률로 나누면 원금이 두 배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대략 계산할 수 있습니다. 연 12% 수익률이라면 6년, 연 6%라면 12년이면 원금이 두 배가 됩니다.
제가 직접 계산해보니 단기 수익을 쫓아 자주 사고팔기를 반복했던 시기보다 분산 포트폴리오를 길게 유지했을 때 심리적 부담도 줄고 결과도 더 나은 편이었습니다. 오건영 단장이 어항 비유로 설명한 것처럼, 빠른 물고기를 족대로 쫓는 것보다 여러 곳에 어항을 놓고 기다리는 전략이 개인 투자자에게 현실적으로 유리합니다.
AI 시대가 전문직의 종말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특정 직업 하나에 인생을 거는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공식이 미래에도 통한다는 확신보다는, 변화를 읽고 분산하고 기다리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PW-gGiIiY
https://www.youtube.com/watch?v=dpeAk8_oR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