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투자를 처음 시작할 때 워런 버핏의 이름을 핑계처럼 사용했습니다. "버핏도 장기투자를 하잖아요"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급등 종목 추천 게시물을 새벽까지 뒤지고 있었으니까요. 그 괴리가 얼마나 컸는지, 최근에야 제대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버핏이 말한 원칙은 단순했지만, 그걸 실제로 따르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복리 효과 : 병뚜껑을 세던 아이가 복리를 이해한 방식
버핏의 자산 중 90% 이상이 65세 이후에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복리(Compound Interest)의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하는 숫자입니다. 여기서 복리란 원금에 이자가 붙고, 그 이자에 또 이자가 붙는 구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시간이 길수록 수익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원리입니다. 문제는 이걸 머리로는 알아도 실제로 체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입니다.
버핏이 여섯 살 때 동네를 돌며 콜라를 팔기 전에 한 행동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판기 주변에 버려진 병뚜껑 수천 개를 직접 줍고 브랜드별로 분류해 수요를 파악했다는 겁니다. 지금으로 치면 소비자 데이터 분석인데, 이걸 여섯 살이 했다는 게 믿기 어렵지만 그 태도 자체가 이후 투자 철학의 씨앗이었다고 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투자 초반에는 이런 데이터 기반 사고보다 감각에 의존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커뮤니티에서 "이 종목 지금 들어가야 해"라는 말이 나오면 재무제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매수 버튼부터 눌렀습니다.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고, 그때서야 버핏이 왜 자신이 이해하는 기업에만 투자한다고 강조했는지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가 1965년부터 2025년까지 약 60년에 걸쳐 기록한 누적 수익률은 610만%에 달합니다. 버크셔 해서웨이란 원래 섬유 제조업체였으나 버핏이 인수 후 투자 지주회사로 전환한 기업을 말합니다. 이 수치 자체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 수십 번의 위기와 조롱, 주주들의 항의가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가치 투자 : 기술주 열풍 속에서 신발 주식을 든 사람
일반적으로 버핏은 항상 탁월한 판단을 내린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가 관련 자료를 들여다볼수록 그보다는 '흔들리지 않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았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 버블(dot-com bubble) 시기가 대표적입니다. 인터넷 버블이란 1990년대 말 IT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실적과 무관하게 폭등했다가 2000년대 초 일제히 붕괴된 현상을 말합니다. 당시 아마존, 야후 같은 기업들의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던 시기에 버핏은 카펫 회사, 신발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주주들의 항의 편지가 쏟아졌고, 언론은 "버핏은 이제 끝났다"라고 썼습니다.
저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AI 관련 종목들이 급등하던 시기에 제가 보유한 종목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커뮤니티 글을 보면 다들 수십 퍼센트 수익을 냈다는데, 제 계좌는 제자리였으니 조급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버핏의 원칙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이 사업을 이해하는가, 10년 뒤에도 이 기업이 존재할 것인가. 막상 그 질문을 던지니 당장 수익이 나는 종목보다 제가 공부한 기업에 머무는 게 맞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2000년 버블이 붕괴되자 IT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졌고, 버핏이 들고 있던 전통 소비재 주식들은 살아남았습니다. 이후 버핏은 2016년이 되어서야 애플에 투자하기 시작합니다. 그 계기가 손자들이 식사 중에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였다고 합니다. "아, 이건 기술주가 아니라 소비재구나"라는 판단이었습니다. ROE(자기자본이익률)나 브랜드 충성도 같은 지표로는 설명이 안 되는 직관이었지만, 그 직관의 근거는 수십 년간 소비자 행동을 관찰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ROE란 기업이 주주 자본으로 얼마만큼의 이익을 창출했는지 나타내는 수익성 지표입니다.
버핏의 투자 철학에서 핵심적인 원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자신이 이해하는 사업 구조를 가진 기업에만 투자한다
- 주가가 아닌 기업의 내재가치(Intrinsic Value)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 시장이 공포에 빠질 때 매수 기회를 찾는다
- 단기 수익보다 장기 보유를 기본 전제로 삼는다
장기 투자 : 숫자를 모르는 사람이 복리를 이야기하는 이유
이 부분이 사실 제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버핏이 213조 원의 자산가라는 사실보다, 그가 수십 년째 같은 집에서 살고 주가가 오를 때는 3달러짜리 햄버거, 떨어질 때는 2달러짜리 햄버거를 선택한다는 사실이 더 낯설게 다가옵니다.
일반적으로 부자가 되면 소비 수준도 함께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버핏은 작은 금액도 미래 가치로 환산해서 봅니다. 지금 쓰는 3달러가 20년 뒤 복리로 불어나면 얼마가 될까를 계산하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인 겁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부자이기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이 사고방식이 있었기 때문에 부자가 된 것이라고 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월급에서 투자금을 떼어 놓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그 돈이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지 않을 때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배당수익률(Dividend Yield) 이 낮은 성장주를 보유하고 있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여기서 배당수익률이란 주가 대비 연간 배당금의 비율로, 투자자가 주식 보유만으로 얻는 현금 수익을 나타냅니다. 버핏이 코카콜라 주식 매수 이후 매년 받는 배당금이 우리 돈으로 약 1조 원에 달한다는 사실은 복리와 배당이 결합했을 때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입니다.
2024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자료에 따르면 버핏은 이번에도 실수를 인정하는 내용을 주주 서한에 담았으며, 그 서한에 '실수'라는 단어가 20번 이상 등장한다고 합니다(출처: 버크셔 해서웨이). 세계 최고의 투자자가 수십 년째 실수를 공개적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은 투자에서 중요한 것이 완벽한 판단이 아니라 틀렸을 때 빠르게 인정하고 수정하는 능력이라는 점을 말해 줍니다.
한편 버핏의 투자 방식이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정보 비대칭이 컸고 저평가된 기업을 남들보다 먼저 발견할 기회가 많았지만, 지금은 헤지펀드(Hedge Fund)를 포함한 기관 투자자들이 실시간으로 같은 정보를 분석합니다. 여기서 헤지펀드란 소수의 고액 투자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사모 투자 펀드로, 개인 투자자보다 훨씬 빠른 정보 접근과 분석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현재 미국 주식시장 거래량의 70% 이상을 기관 투자자와 알고리즘 트레이딩이 차지하고 있습니다(출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이런 환경에서 "버핏처럼 하라"보다 "버핏처럼 원칙을 세워라"가 더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봅니다.
결국 이 내용에서 제가 가져온 것은 특정 종목이 아니라 태도에 대한 질문입니다. 나는 지금 이 기업을 이해하고 있는가, 이 가격이 적절한가, 10년 뒤에도 이 사업이 유효한가. 이 세 가지 질문을 매수 전에 스스로 던지는 습관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달 꾸준히 투자금을 넣고 있지만 아직 극적인 변화는 없습니다. 그래도 복리의 특성상 변화는 마지막에 한꺼번에 온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지금 할 수 있는 건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뿐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